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보호해야 한다. 나를 보호해야 한다. 거의 본능적으로 나를 보호하기 위한 행동들이 취하고 있다.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정윤우 말이다. 이 기록도, 이 여행도, 이 허허도, 이 단순함도, 이 침묵도, 이 성마른 선택도, 어쩌면 모두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일지 모른다. 나의 행동패턴을 떠올려 보면 아마 맞을 것이다. 하지만 충격의 완화효과는 있을지언정 그다지 보호하지는 못할 게 분명하다. 어차피 맨몸으로 통과하는 수밖에 딱히 도리가 없다. 내가 바라는 바 이기도 하다. 몇 번 '완전히' -하긴 그 마저도 완전했다고는 볼 수 없다 - 보호했던 적은 있었다. 시간을 감각했을 때였다. 기억이 너무도 선명하다. 그 해방감과 함께 찾아온 감미로운 평온을 어떻게 잊을 수 있단 말인가. 새벽에 깨어났다. 잠을 설쳤다. 일어나 배낭을 싸려고 한다. 7월 8일, 금요일 아침이다. 기록으로 남긴다.
<"시인은 누구나 다른 갑남을녀에 비해(얼마만큼 '무의식적'이든 간에)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더욱 강렬히 항거하는 일에서 시작한다"는 블룸의 주장은, 시인이란 운문짓는 자라는 테두리를 넘어서, 내가 그 용어를 사용하듯이 광의적이며 발생적인 의미로 확장시켜, 가령 프루스트, 나보코프, 뉴턴, 다윈, 헤겔, 하이데거 들과 같은 이들을 모두 그 용어의 범주에 포함되게 하고 싶을 거라고 가정한다. 그러한 사람들 역시 우리들 대부분의 범인들보다 더욱 강렬하게 '죽음'에 항거하는, 다시 말해서 창안을 못 해내는 것에 항거하는 인물로 간주되어야 할 것이다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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